Top 43 어버이 주일 설교 The 78 New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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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 김은호 목사 주일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 2020-05-10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 주일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 2020-05-10


어버이주일의 참된 의미(엡6:1-3) –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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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의 참된 의미(엡6:1-3) -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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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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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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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설교 모음 ( 곽선희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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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설교 모음 ( 곽선희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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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주일 설교]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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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3

에베소서 61-3

[어버이날 주일 설교]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리폼드뉴스
[어버이날 주일 설교]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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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설교] 부모님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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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시 103:13, 말 3:17, 출 20:12, 엡 6:1-3, 골 3:20

    지난 주일 전주 대언교회에 가서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며 귀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어린이들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오늘 그레이스 선교교회에 와서 ‘부모님을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제목으로 부모님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되어서 아주 적절하게 잘 되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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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설교] 부모님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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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설교 – 효도의 특별한 뜻 (창 9:20-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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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설교 - 효도의 특별한 뜻 (창 9:20-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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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0일 어버이 주일 / 본문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을 때는 –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크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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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0일 어버이 주일 / 본문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을 때는 –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크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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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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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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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의 참된 의미(엡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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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의 역사적 유래(엡6:1-3)역사적으로 말하면 본래 어버이날은 어머니날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일찍이 미국 필라델피아 웹스터라는 마을에서 26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있었던 애너 제비스 여사를 추모한데서 유래했습니다. 원래 1907년에 시작하여 1914년부터 공식적으로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했습니다.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꾸었는데 미국에서는 1916년부터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날로 정했습니다. 어머니 주일에는 카네이션을 꽂아드리는데 아버지날은 자녀들이 아버지를 의자에 꽁꽁 묶어 놓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게 하는 풍습이 있었서 아버지날은 실로 아버지들이 곤욕을 치르는 날이었습니다.부모 공경할 이유(출20:12)1.하나님의 계명(출20:12)창세기부터 아버지를 공경하는 자는 축복을 받았고 아버지에게 불경하는 자는 저주를 받았습니다(창9:25-27).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해야함을 십계명에 넣으시고 약속있는 첫계명으로 삼으셨습니다(출20:12). 예수님은 부모님을 잘 순종하여 받드셨으며(눅2:51) 심지어 십자가상에서도 어머니를 염려하셨습니다(요19:27). 실로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상급인 동시에 열매입니다(시127:3). 부모는 하나님의 대행자로 축복도 하며(창28:6) 예언도 했습니다(창49:1).2.도덕적 계율(엡6:1-3)이미 성경 여러 곳에서 상세하게 강조된 것과 같이 인간 윤리는 부모효행에서 시작합니다.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가정윤리 기초요 모든 인간의 행위 첫 규범입니다. 인간 최초, 최소의 공동체는 바로 가정 입니다. 이 가정제도는 신구약 신학의 원리요 평생 수행해도 못 다할 인생 과제입니다.부모 공경하는 방법(엡6:1-3)1.주안에서 순종(엡6:1)부모에게 순종하되 주안에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원리를 총망라한 설명입니다. 아무리 효행이 중요해도 우리의 신조와 신앙 원리를 초월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즉 주안에서란 말은 하나님 섬김의 표준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보다 더 높을 수는 없고 부모를 향한 애정이 계명을 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귀히 여기고 섬기는 나머지 신앙의 대상이거나 어떤 종교적인 의식인 형식은 더욱 죄를 지을 따름입니다.2.부모를 공경(엡6:2)여기서의 공경의 의미는 무겁게 대하다, 혹은 명예를 높이다, 그리고 섬기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이는 부친은 공경하나 어머니는 함부로 대하고 또 다른 곳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부모는 마땅히 자녀들로부터 사랑과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이 말의 반대는 멸시와 천대, 그리고 버림을 받거나 학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아버지를 부끄럽게 한 함은 저주를 받았고 수치를 덮어 준 셈은 종교적인 축복을 받았고 야벳은 땅위에서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창9:25,26).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던 압살롬은 나무에 매달렸으나(삼하18:14), 부친의 명에 순종하던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왕상6:38).3.약속있는 첫계명(엡6:3)제5계명은 다른 계명과 달리 명령형과 약속, 그리고 거기에 따른 축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한 이 구절은 명령과 약속, 그리고 의무와 축복을 함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구약에 다 기록이 되어 있고 그 보증은 주의 보혈과 성령입니다.중국의 장개석은 자기 생일이면 어머니의 산고(産苦)를 생각하고 금식했습니다. 또 오래전에 11년 동안 연세대 총장을 역임했던 박대선 목사님은 모친(김순이 여사)을 극진히 봉양하여 우리들의 귀감이 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사건입니다.성경에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나 교회사에 나오는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얘기는 너무도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19남매중 15번째의 아들 요한 웨슬레를 세계의 부흥사로 키운 수산나는 길이길이 빛날 모친상입니다.결론요즘 젊은이들은 효도의 이론과 이치는 잘 알면서도 직접 실천하는 모습은 정작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은 가정 안에서의 도덕과 창조질서가 무너졌기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부모가 먼저 효행의 본을 자녀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가정 먼저 해야할 참된 효행은 바로 효도관광이나 묘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영혼을 구원하고 심령을 평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어버이주일 설교

성경적인 효도방법론 잠1:8-9

오늘은 5월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적인 효도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적인 효도관이란 성경에서는 효도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효는 십계명 중 사람에게 대한 계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계명입니다. 이 효도의 계명은 는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보다 더 강조되는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우리 기독교가 불효의 종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부모님이 계신 분들은 더욱 효도 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안 계신 분들은 자손들에게 효를 가르치시기 바라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를 이렇게 공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성경이 말씀하는 효도는 무엇입니까?

1. 성경은 부모의 말씀을 듣는 효도를 가르칩니다.

잠1:8-9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 말씀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 가정의 제사장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가르치는 말씀은 곧 성경이었고 설교였습니다. 오늘날도 가정의 제사장은 누굽니까? 바로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손들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축복할 의무와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온전히 부모의 교훈을 들어야 했었습니다.

여기서 부모공경의 귀중한 힌트를 주는데 이처럼 부모 공경은 말씀을 잘 들어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 중에 불신자도 계시니까 그 말씀대로 하지 못할 내용도 간혹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힌트는 부모를 어떻게 섬기느냐? 그 말씀을 들음으로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옳든지 그르든지 일단 그 인격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잘 들어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중풍 병드신 분의 가족들이 어린아이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을 들어드리고 높이고 존경해 주니까 마음의 문을 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도하고 기도해 주자 몇 일 만에 나아서 퇴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담학에서도 남의 말을 성의 있게 들어주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연세 들면 소외된 기분이 들고 슬프고 외롭습니다. 그래서 내가 존재해 있다는 의식마저도 크게 위축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말씀을 들어드릴 때 이 모든 외로움도 위축도 소외됨도 다 사라지게 됩니다. 말씀 존중에 곧 하나님 존중이듯이 부모의 말씀 존중이 곧 부모 공경입니다.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첫째가는 방법입니다. 성경이 교훈하는 이 공경 법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은 순종하는 효도를 가르칩니다.

엡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습니다.

여기 주 안이란 순종의 범위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이 용어에는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주 안에 있는 성도이기 때문에 순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혹시 불효를 한다 해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할지라도 믿는 우리들은 달라야 됩니다. 이 세상 풍조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좀 그런 예화 같습니다만 어느 탈렌트를 보니까 기독교인입니다. 그가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신혼여행 가면서 어머니 모시고 가기가 쉽습니까? 사실 함께 가자고 해도 같이 갈 부모님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함께 갔다면 그만큼 원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라스베가스에서 행운권에 당첨이 되서 수십억 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행운권이 나오고 물론 예화가 좀 그렇습니다만 효도하다가 잘되는 것을 보고 보기가 좋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에게 어떻게 하든 우리 성도들은 주 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첫 계명대로 신자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되 순종함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방법이나 육신의 부모 섬기는 방법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부모도 섬기지 못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겼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섬기듯이 육신의 아버지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 섬기는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순종이란 먼저 그 뜻에 기쁨을 표시하는 것이고 순순히 따르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순종한 것을 보세요. 젊은 아이를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이삭은 도망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3.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를 가르칩니다.

엡6:2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했습니다.

여기 공경이라는 말은 “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두다”라는 의미로 함축적으로는 “존경하다, 공경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공경하다라는 용어는 요5:23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낱말로 쓰인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으로 섬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섬기듯 존경하고 받들어야 합니다.

이 효도하는 것을 누가 보시느냐? 우리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그러므로 효도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장래를 복되게 하십니다. 이 효도에 관해서 딤전5:4에는 이렇게 교훈합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먼저, 효를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효도한다고 하면 막지 마십시오. 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자손들에게도 복 받는 것입니다. 어제는 어느 노 목사님 고희를 맞이하여 그 자녀들이 잔치를 베풀어 가서 참석하고 왔습니다만 자녀들이 효도한다고 하면 하라고 하십시오. 자녀들을 효자 만드는 것이 그들이 복 되는 길입니다.

그 다음에는 효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아름다운 제사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분명히 육신의 부모님에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불효하는 자는 절대 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는 불효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출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했습니다. 출21:17에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잠30:17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했습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어떻게 부모에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 원리는 육신의 부모나 믿음이 부모나 영의 아버지 하나님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노아의 자손들 중에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었지만 함은 그 허물을 덮지 못하고 발설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다가 효행한 두 사람은 복을 받았지만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왜 그랬을까요? 부모 공경이 무너지면 신앙은 물론 사회의 모든 기강까지 다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4.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효도를 가르칩니다.

잠23:25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잠15:20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의로워야 합니다. 잠23:24에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부모를 늘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즐겁게 해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5. 부모에게 전도하고 기도하는 최고 사랑의 효도를 가르칩니다.

수2:18에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했습니다.

여리고 성의 라합이 회개고 온 가족을 전도하여 구원시키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육신적으로 잘 해드려도 전도하지 않으면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된 천국에 가게 해 드려야 합니다. 반면에 절대로 불타는 지옥에는 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속히 돌아가시면 자유롭게 신앙 생활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생각만큼 불효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하여 천국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도 이렇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공경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기도로 대화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를 잘 공경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성진 목사

제목; 의인의 집에 있는 많은 보물 잠15:5-17

<찬송=234나의 사랑하는 책, 304어머니의사랑, 303가슴마다, >

제 목:[작은창] ‘孝’자의 유래

시골 어떤 지역에는 닷새 만에 장이 선다. 장이 서게 되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서 장에 팔러 나간다. 늦은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이제나 저제나 아들을 기다린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 동구 밖까지 나가본다. 멀리서 한 사람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좀 더 자세히, 좀 더 멀리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간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이라고 한다. 이제 아들은 시장에 가서 나무를 팔아 그 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반찬과 몇 가지 일용품을 사들고 오다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만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말한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찌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릴 테니까 이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노인을 지게 위에 태우고 오는 아들의 모습이 한자의 효도 ‘孝’자이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요, 평화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보금자리이다. 우리의 가정이 모두 친(親)과 효(孝)가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박상훈 목사

5월은 가정의 달, 사랑의 달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신앙을 갖자는 의미에서 드리는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사랑의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헌신해 주신 박형제 가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 있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인의 집, 신앙의 집, 믿음의 집을 말합니다. 이런 의인의 집에는 어떤 보물이 있습니까?

1, 의인의 집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큰 축복은 마음속에 있는 확신입니다.

(7)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본문에 미련한 자는 마음에 정함이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함이 없다 -흔들린다는 말입니다. 무언가 확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정함이 없는 마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파괴되고, 청소년 들이 탈선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저들은 어떤 면에서 정함이 없습니까?

(시78:37),,,”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 하였음이로다,”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까? 말까? 어떨 때는 잘 믿는 것 같다가, 어떨 때는 안 믿는 것 같고,,, 이렇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세상의 재물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돈 만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약1: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런 사람은 기도에 응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축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흔들림이 없는 가정, 참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인 줄 믿습니다.

2) 그러면 흔들림이 없는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신앙이 흔들림이 없는 신앙인 것입니다.

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겠다는 확신을 가진 신앙을 말합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확고한 신앙을 말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어떤 것도 단호히 거절 할 수 있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신앙이 흔들림이 없는 확고한 신앙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앙 속에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2, 의인의 집에 내리시는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 사람들은 부담을 갖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찮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하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든지 기도하면 기쁘게 응답하시고 축복 하시는 것입니다.

(약1:5-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4:2-3)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가정은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이 믿음 굳게 지키는 아름다운 신앙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의인의 집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축복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9)“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의의 길을 따르는 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찬송-‘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은 3장16절,,,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탕자처럼 살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한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나를 위하여,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나 섭섭하여 죽고 싶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노예를 팔고 사던 시절 어느 집에 주인의 신임을 받는 ’조’라는 노예가 있었다. 어느 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더 사려고 조와 함께 노예시장을 갔다. 그 때 조는 유난히 늙고 힘없어 보이는 노예를 보더니 그를 사자고 했다. 주인은 “저 노예는 너무 늙어서 쓸모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네게 짐만 될 것이다”고 거절하였지만 사랑하고 신뢰하는 조의 간절한 청원 때문에 할 수 없이 늙은 노예를 샀다. 집에 돌아온 조는 그 늙은 노예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며 유별나게 보살폈다. 그러한 조를 이상히 여긴 주인이 그를 불러 이유를 물었다. “혹시 네 아비가 아니냐?” “아닙니다. 그는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원수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가 나를 유괴해 노예시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노예시장에서 뜻밖에 그를 보게 되었고 순간‘너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제 신분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내려주신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돈보다, 재물보다, 명예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4, 의인의 집에 내리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은 마음속에 즐거움입니다.

(13)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항상 즐거운 자는 잔치를 합니다.

가정과 교회는 항상 잔치집과 같아야 합니다. 잔치 집에 가서 울거나, 싸우고, 화내고 합니까? 아닙니다. 교회와서는 울거나 싸우거나 화내거나 하지 마세요, 우리 가정과 교회 예배는 잔치입니다.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배를 잔치하는 신앙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즐겁게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기쁘고 즐겁지 않습니까?

저는 항상 사역을 그렇게 할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얼굴도 환하게 밝아질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은 십자가 밑에 다 던져 버리고, 주님 주신 기쁨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세계로열린교회 성도 가정은 언제나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5, 의인의 집에 내리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16)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 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서로 싸우고 다투는 사람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가끔 봅니다. 재산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였던 패륜아의 소식을 듣습니다. 이것이 무슨 창피스러운 일입니까? 차라리 돈이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가 비록 작지만 서로 사랑하는 성도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주님을 섬길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큰 교회 일수록 사랑이 더 없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이 서로 가족같이 형제같이,,, 그렇게 지내는 것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교회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가 제일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긍지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더욱 큰 축복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4

구약 출애굽기 20장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열 가지 계명 중에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부모 주일을 당해서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십계명은 원래 두 개의 돌판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돌판에는 우리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다루는 네 개의 계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만 택하고 하나님만 섬기라 했습니다.

둘째 계명은 하나님을 바로 알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 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여 주시며 우리와 영원 히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셋째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넷째 계명은 주일을 지키는 일에 대한 계명인데, 가장 기쁜 날로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첫째 돌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둘째 돌판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여섯 개의 계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중에 부 모를 공경하라 는 계명이 약속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십계명은 우리에 게 두 가지 큰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교훈은 사람이 바로 살려면 종교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교훈은 종교적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당면한 큰 문제는 인간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 은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묻혀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 하든 나는 상관없어. 나는 나대로 살 거야 하는데, 사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사회적인 동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천성적으로 함께 모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둘려 있지 않으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는 않습니다. 사람은 함께 살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조화 있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교훈을 배우는 교실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가정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직장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에게 주신 말씀은 지극히 실제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라 는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 아주 필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변합니다. 인심이 변합니다. 생활양식이 변합니다. 풍속도 변합니다. 옷 모양도 변합니다. 화장하는 법도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는 가운데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절은 변하지 않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되고 가을을 보내면 겨울이 닥칩니다. 물론 물이 섭씨 0도가 되면 얼음이 되고 섭 씨 100도가 되면 끊습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도덕의 법칙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이와 같습니다.

첫째로, 부모 공경은 도덕 법칙의 제일조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맺는 인간관계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이 관계를 옳게 가져야 다른 사람과도 옳은 관계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효도는 모든 사회도덕의 기초가 됩니다. 흔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윤리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오해입니다.

유교 사상에 젖어 있는 분들은 기독교 문화와 유교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 때문에 기독교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 이상 윤리적인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의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21절에 뭐랬어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 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했습니다.

사실 윤리를 떠난 기독교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동양의 도덕을 간추려 말하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도 삼강오륜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에게 삼강오륜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삼강은 압록강, 한강, 낙동강이고, 오륜은 올림픽을 한문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한 현실입니다.

여러분, 삼강의 제일 먼저는 부위자강(父爲子綱)이라고 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륜의 제일 첫째도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친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다른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효도는 도덕 법칙의 제일조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모든 도덕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로, 부모공경은 사회질서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신 말씀 은 꼭 부모뿐만 아니라 웃어른을 공경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리문답에 보면 제 5계명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제 5계명에 명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속한 지위와 인륜 관계, 즉 상하와 평등을 따라 높일 자를 높이고 행할 일을 행하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두려워하여야 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사회 질서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을 때 사회의 질서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 사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윗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점점 못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할 사람이 없다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에게 순복할 때 가정의 질서가 섭니다. 노아의 자녀는 노아에게 순종했고, 아버지를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가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대역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목사의 자녀가 순복하지 아니할 때 목회 생활에 오는 지장이 얼마 나 큰지 모릅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그 말씀을 순종할 때 학교의 질서가 섭니다.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 그 책임자를 존경하고 그 지시에 따를 때, 그 기관이나 단체의 질서가 잡힙니다. 모든 국민이 그 나라의 법을 존중히 여기고 그 법을 준수할 때 국가의 안녕 질서가 확립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가정에서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녀라야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에게, 직장에 가면 상사에게 순종하고 사회에서는 좋은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런 사회는 자연히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얼른 볼 때 요사이 미국이나 구라파에는 도덕 질서가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아닙니다.

정상적이 아닌 것들이 눈에 띄게 크게 부각되는 것 같지만, 사실 서구 사회는 기독교의 깊은 영향을 받아 안정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리 괴상한 것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그것은 소수이고 소위 조용한 대중(Silent majority) 이 있기 때문에 서구 사회가 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정신이 깊이 가정과 사 회에 뿌리박고 있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부모 공경은 신앙의 첫 열매입니다.

십계명 중에 첫 번째 네 계명은 하나님께 신앙적 인 면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섯째 계명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 다시 말하면 믿음 을 가진 사람의 생활의 첫 열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 신앙이 있다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이 면에서도 나아야지, 못하게 되면 안 되겠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말씀은 어린이가 자기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 고 이 말씀은 십대 소년 소녀가 자기의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갓 결혼한 청년 부부가 자기들의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아주 나이 많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계신 중년들도 자기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말씀을 더 어기고 있습니다. 10대보다 20대가, 20대보 다 30대가, 30대보다 50대 사람들이 더 어기고 있습니다.

자녀 되신 분 잘 들으세요. 여러분 가정에 연세 높으신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날이 언제 인지 아십니까? 부모님의 생신일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그 날만은 특별히 대접을 받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생일잔치 준비를 시키면서 애들아, 내가 무슨 대접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니! 너희가 복 받으라고 그러는 거야 하시면서 생일잔치 독촉을 하십니다.

가끔 연세 높으신 댁 생신에 초대받아 보면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아니, 나는 그저 지내자고 했는데, 우리 애들이 이렇게 야단스럽게 그러지 뭡니까? 라고 하시면서 흡족해하시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아마 자세히는 몰라도 그 할머니는 너무 좋으셔서 음식 장만하시는 데 간섭하시느라고 한 달 전부터 애쓰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좋아하시는데, 자녀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겠어요?

제가 전에 이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목사님, 제 시어머님이 목사님 교회에 다니시는 데요. 아, 그러세요.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 시어머니 생신이 되거든요. 네, 그러세요. 축하합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생일 축하 예배를 드리려는데, 좀 와 달라는 부탁인가 보다 하고 생각 했거든요. 그런데요, 목사님. 우리 시어머님은 벌써부터 생일 준비하시느라 야단이셔요. 그러시겠죠. 그런데요. 그런데요 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게 아무래도 무슨 어려운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예요. 목사님, 교회에서 노인들 생일잔치하지 말라는 설교를 좀 하실 수 없으세요? 왜요? 형편 이 허락치 않는데 저희 시어머니는 벌써부터 친척, 친구 다 몰아오신다고 야단이시거든요. 그러세요. 가정 형편이 그렇지 못하거든요. 저는 속으로 너무 가난해서 전화나 겨우 놓고 사는 댁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애기 아버지는 무슨 일을 보시는데요? 우리 아빠는 아무 회사의 중역으로 있어요. 그러시면 생활해 나가시는 데는 괜찮으시겠어요. 그렇지요. 상류는 못 돼도 중류 이상은 돼요. 그러시겠어요. 그런데 애 아빠와 의논해 보셨어요? 우리 그이는 그저 가만있어요. 그럴 것 아니겠어요. 부인과 어머니 사이에서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 부인 얻은 게 한심하지요.

오늘 우리 주변에 이 와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우리가 부모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 자녀가 나이 들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될 것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인생을 다루는 방법으로 우리를 다룹니다. 야곱이 젊어서 늙은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그랬더니 야곱이 늙어서 그 자식에게 또 속았습니다.

여러분,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가 힘쓰지 않으면 부모를 등한히 하기가 쉽습니다.

옛날부터 내리사랑 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 돈 쓰는 것은 아깝지 아니하지만 부모를 위해 쓰는 것은 아까울 수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허리가 끊어지는 것같이 아프면서도 손자를 업고 수고했는데, 할머니 등에서 애를 받는 어머니가, 할머니, 얼마나 허리 아프셨겠어요? 하고 말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예쁜아, 다리 아팠지?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흔히 가정에서 커피 끓여 드시면서 젊은이들끼리 들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빼 놓은 경우는 없습니까? 경우 있으신 분들은 젊은이들 틈에 일일이 끼어들기가 미안해서, 얘, 나는 커피 좋은 것 모르겠더라. 난 숭늉이면 돼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씀은 몰라도 그런 말씀은 액면 그대 로 들으시면 안돼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정말 안 좋아하시는 줄 아세요? 전에 어느 나이 많으신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어요. 입맛이야 젊은이나 늙은이나 한 가지지 하십니다. 늙어도 입맛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젊은이가 맛있어 하는 것은 나이 드신 분들도 맛이 있어 하십니다.

젊은이는 사업하느라고 교제도 하고 그러자니 용돈도 많이 쓰게 되지만, 나이 많아지면 뭐 용 돈도 필요 없지 않겠나? 생각하기 쉽지만,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나이 들수록 용돈이 더 필요하다고 해요. 손자 애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돈을 줘야 할아버지, 할머니 하면서 따른다고 해요. 나이 들면 아무리 아들, 딸이라고 해도 용돈 달라고 하기가 참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말씀드립니다. 미리 알아서 자녀는 부모님께 용돈을 넉넉히 드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효도의 길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모님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믿는 사람만이라도 이 말씀대로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조준 목사

어버이의 즐거움 잠23: 22-25

시인 피천득씨의 글 가운데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30대에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는 얼마나 젊고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내가 새 한 마리도 죽이지 아니하고 살아온 것은 내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 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내 어머니한테서 배운 웃음입니다. 나의 간절한 희망이 있다면 내 어머니의 아들로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자녀들의 마음은 이렇게 어머니의 숨결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풍요로운 사랑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땅에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며 살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고마우신 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나누어주신 분입니다. 때문에 내 아버지 내 어머니는 이 땅에서 우리의 공경을 받아 마땅하신 분들입니다. 세상 최고의 스승이 있다면 아마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귓전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요 가장 위대한 스승 아니겠습니까? 내 어머니는 우리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분이시오, 우리 하나님은 내 어머니 같으신 분이십니다.

프랑스에는 역사상 69명의 왕이 집권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세 사람의 왕만이 백성들로부터 한없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공통점은 모두 친어머니의 젖을 먹고 친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왕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체험한 왕은 그 사랑 때문에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 왕의 마음에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심겨져 있었기에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듯 우리나라도 서구 문화를 반영해서 가족 관계는 급속하게 붕괴되고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를 다하며 사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인정과 사랑은 끊어지고 메마르고 가시밭 같은 관계로 변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세련되고 경제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좋았던 가족 관계는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던 아름다움은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가시고기와 우렁이

부성애를 나타내는 가시고기와 모성애가 강한 우렁이가 떠오릅니다. 가시고기는 소설로서 더욱 유명합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숫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 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한 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들의 함축된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또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으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갑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는 아버지의 희생과 살을 깎아 먹이는 어머니의 희생은 어디에서 보상받게 될까요? 성경은“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만 나이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서서히 짐이 되는 존재로 전락하는 듯합니다. 자녀들이 제 아무리 효도를 다한다 해도 부모의 사랑을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어버이주일에 가시고기와 우렁이를 생각하며 못 다한 효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감사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다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기리며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보다 선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다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몇 년 전에 삼성생명에서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업광고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스물하나 –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 적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여섯 – 시집온 지 오 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둘 –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밤길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주었습니다.

쉰둘 –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한 아버지의 고백

몇 해 전에 신문에 기고되었던 내용인 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스물아홉 살에 그는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부인이 산실에 들어가서 산고를 치르고 있을 때, 그는 문 밖에서 무려 열 네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려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일곱 살에 그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들어가서 우등상장을 타왔을 때 그 걸 액자를 만들어서 방에 걸어놓고 쳐다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해했다, 누렇게 바래질 때까지.

마흔 여덟 살에 자식이 대학을 입학한다고 입학시험을 치르게 될 때, 이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초조할 수가 없었다. 생애에 있어서 가장 초조한 시간으로 기억된다하는 얘기입니다.

쉰 세 살에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아버지 내의를 하나 사왔을 때, 쓸데없는 데 돈을 썼다고 일단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만져보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예순 한 살에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놈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나는 멀찍이 서서 나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마음입니다. 그저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귀한 것입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하라.

그리고 내 자신이 부모님의 길을 즐거워하라. 기쁘게 해드리라고 말합니다. 역시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라고. 존재의 가치를. 그의 지혜, 그의 경험, 그의 사랑 그리고 그 깊은 잔소리 속에 중요한 교훈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측은히 여기든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는 공경하는 것입니다. 존경이 없는 사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지 마시고 높이 존경하고 그 지혜와 경험과 그 거룩한 본을 우리가 존중해야 됩니다.

또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효할 수 있는 길은 의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아야 됩니다.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깊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높은 도덕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언제나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의 지름길은 내가 의롭게 사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보상해 드려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여야 한다고 성경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듣는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청종하는 지혜입니다.

또 한 가지 오늘 성경이 증거하시는 것은 “내 길을 즐거워하라.” 고 말합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길은 부모님의 길, 그의 선택, 그의 철학, 그의 이상, 그의 살아온 생을 내가 기뻐해야 됩니다. 부모님은 마음속에 지금 무언가 잘못 살았다고 하는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만 자식의 행위를 통하여, “아닙니다. 부모님은 잘 살았습니다.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훌륭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자랑하게 만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효 그 자체가 복입니다. 효가 있는 가정이 복됩니다. 효가 복의 근본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자녀교육을 바로 하고 싶습니까? 효도하십시오. 그리고 내버려둬도 자녀들은 저절로 훌륭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즐겁게 합시다. 효는 문화의 유산이 아닙니다. 효는 이 나라의 단순한 도덕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크나큰 원리와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사회에서 노인은 인생 막바지 황혼을 걷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 안식년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년에 일을 할 수 없다 해도 심리적인 열등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구약성서나 유대인의 전통에서 노년기는 구원의 희망을 향해 가는 시기요 인간 성숙의 정점인 자기실현을 위한 안식년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인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고귀한 목적에 자신을 바치게 됩니다.

사람이 늙으면 세 가지 서글픔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아픈 데가 많습니다.

늙으면 몸이 노쇠함으로 자연히 아픈 데가 많아집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쑤시고 무릎도 아픕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식들의 눈치 보느라 아파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어디가 아프신지 관심을 가지고 자주 물어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외로움을 잘 타십니다.

젊었을 때는 바빴지만 늙으면 한가해집니다. 젊어서는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많고 외로워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물러나 일손을 놓으셨기 때문에 한가해지고 만나는 사람도 적어집니다. 시간은 많은데 하는 일이 적어 외로운 시간이 많습니다. 시집간 딸 생각, 외국 나간 아들 생각으로 밤낮 자녀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건강한지 늘 궁금해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지는 못한다 해도 부모님께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려야 합니다.

셋째로, 배고픔을 자주 느끼십니다.

모든 기능이 약해지다 보니 마음뿐이지 많이 잡수실 수가 없습니다. 입맛도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많이 잡수시면 탈이 납니다. 그래서 자주 시장기를 느끼십니다. 몸도 허하고 기름기도 없으니 중간 중간 시장하실 때마다 잡수시도록 눈깔사탕이나 땅콩, 과자… 좋아하시는 간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챙겨 드리시기 바랍니다.

효도는 복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며, 가정이 화목해지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아들딸도 효자가 될 것입니다. 부모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어떻게 했는지 보고 배웠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할 것입니다. 어느 분가해간 자녀들은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매번 십일조를 부모님께 보내오는 자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하듯이 부모님께도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합니다. 노인에 대한 사랑은 곧 자기의 미래에 대한 사랑 곧 자기 사랑입니다. 노인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노인 되었을 때를 생각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노인을 사랑하면 바로 그것은 장차 올 내 미래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동안 부모님께 불효한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시고 이제부터는 참 효도를 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지요. 부모님은 인간관계의 첫 출발점이십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웃음을 보여주신 분이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서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려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아플 적에 우리가 병들었을 때에, 우리가 힘들고 괴로울 때에 가장 많이 걱정하고 염려해 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어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책임지고 그 필요함을 채워주신 분들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철저하게 희생하시는 분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을 위해서 끝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명령하십니다. 사람은 철이 들고 나서야 부모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암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한 의사는 5월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불효자라는 죄책감에 마음이 짓눌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종종 재래시장을 찾곤 하는데 시장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나물을 팔고 계신 할머니를 볼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자신의 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참회의 눈물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가난을 벗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는데, 막노동을 하던 중에 철근에 깔린 어머니를 구하려고 하다가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나물을 캐고 다듬어서 시장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어머니는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용돈이라고 내게 기쁜 마음으로 주셨어요. 그런데 나는 그게 싫어서 뿌리치고 달아나곤 했어요. 나는 잘 먹고 잘 입지는 못했지만 악착같이 공부했지요. 그래서 부자 집 자식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어요. 부자 집 자식들은 그런 나를 미워했어요…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어느 날 4교시 수업이 끝날 때에 친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복도를 보니 낯익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절뚝거리면서 교실로 들어오시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려고 다듬은 나물 한 봉지를 들고서 찾아오신 겁니다. 그러자 부자 집 아들이 어머니의 절뚝거리는 흉내를 내면서 나에게 ‘야, 너 네 엄마 병신이었냐?’ 하며 비아냥거리는 거예요. 순간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와~’ 하며 낄낄대며 웃더라구요. 나는 참을 수 없어서 부자 집 아들을 정신없이 두들겨 패줬지요.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와 그 부자 집 아들이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호통을 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 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내는 거야 뭐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 집 귀한 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으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부자 집 아주머니가 내뱉은 듣기 거북한 말을 듣고서도 어머니는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당당하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어요.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수업료를 꼬박꼬박 챙겨주셨지요.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나를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ooo야, 네 어머니께 잘해드려야 한다. 그리고 어제 주신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전해주거라.”…

그 후 17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처가(妻家)에서 병원도 개업해 주고 너무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잊고 살았어요. 솔직히 잊고 싶었던 겁니다. 어머니에게는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리기는 했지만 한 번도 찾아가 뵙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우리 집 앞에서 한 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 거예요. 야윈 얼굴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었는데 다리를 절고 있었지요. 그 노인은 바로 저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면서 “애, oo아, 많이 좋아졌구나.” 하고 다가 오시더라구요. 가정부가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순간 나는 차가운 말로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할머니. 저는 oo이가 아니라 최oo입니다.”

어머니는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돌아 가셨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자, 가정부는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 있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후에 나는 한 달 동안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나머지 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지요. 어머니는 내가 생활비를 보내주었지만 여전히 시장 한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면서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곁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그때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할머니,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하고 물었어요. 어머니는 “아니여. 우리 아들은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고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 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만. 우리 아들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하며 자랑하시면서 나물을 듬뿍 주고 있었어요.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도 달려갈 수 없었어요. 곧장 어머니가 살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에 들러 방 틈으로 돈 봉투만 넣어두고 돌아왔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이 지날 무렵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내려오라”는 부고였습니다. 부고를 받고 시장에 들렀는데, 정말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어요. 집에는 선생님 혼자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저를 불렀습니다. “oo아, 내 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은 나에게 어머니가 쓰시던 낯익은 보따리를 주시면서 “풀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보따리를 풀어 보니 돈이 있었습니다. “이거,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 동안 네가 돌아오면,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 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리셨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 해 하시더구나.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렸는데,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적이었다. 너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퇴근길에 집에 오는데, 네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것을 보셨단다. 마침 너의 부모님은 자식이 없던 터라 너를 데리고 가서 키우기로 했단다. 배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너를 데리고 와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어린 너를 혼자서 집에 둘 수 없어서 항상 공사판에 데리고 다녔는데, 네가 무너지는 철근 밑에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뛰어들었단다. 네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너의 아버지가 너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는데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게 되셨단다. 그러니 너는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 덕에 살아났다는 거야. 다리를 다쳐 벌이가 시원치 않아 생활이 어려울 거라고 염려하던 주위 사람들이 네 어머니에게 “키워봤자 소용이 없으니 고아원에 보내라”고 했다는 구나.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너를 버리지 않고 당신의 목숨보다 귀하게 키웠다는 거야. 네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에 네 어머니는 암이 걸리셨는데, 그것을 알고도 네 학비를 대기 위해서 병원에 가지 않으셨단다. 그리고 네가 암 전문의가 되어 명성을 날리자, 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너를 보려고 물어물어 서울에 올라가셨다가 집에 내려오셨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나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허울 좋은 인간의 가식에 머리를 들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잔잔한 미소로 이 불효자를 바라보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우리의 곁에 가까이 계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자식들이 부모님 곁에 가까이 있습니까? 사람은 철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전문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철이 든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철든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은혜를 알 때 비로소 철이 든 것입니다. 사랑의 깊이를 깨달을 때 철이 든 것입니다. 철들기 전에는 뭐든지 떨떠름합니다. 깊은 맛이 없어요. 철없는 사람에게 사랑은 아래만 보입니다. 내리 사랑만 하는 사람은 아직도 철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철들고 나서야 비로소 위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것입니다.

철든 신앙인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철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철들지 못한 사람은 청개구리처럼 비가 올 때마다 웁니다. 철들지 못한 사람은 어버이날이 다가올 때마다 불효자로서 우는 것입니다. 복은 받았지만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귀한 뜻이 담긴 시 하나를 소개합니다.

오해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짧은 파마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배가 빨리 불러 와 좋은 음식 앞에서 먼저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안주머니에는 늘 돈이 얼마쯤은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오해를 오랫동안 해왔던 우리들입니다.

이제는 자녀로서 진정 어버이의 즐거움을 위해 후회 없는 효도를 다짐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제 5 계명을 지키라 출20:12

우리는 지금 실로 어렵고 어두운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렵고 어두운 시대 한 가운데에는 위기의식을 느끼며 위협받고 있는 가정이 우뚝 서 있습니다.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설명은 한 마디로 요약하여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개개인의 사상과 가치관의 혼돈 더 나아가서는 걷잡을 수 없이 매순간마다 달라져 가는 무서운 속도의 변혁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 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심각한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속수무책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정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값진 최상의 선물인데 이 가정이 가지고 있는 성경 본래의 의미는 이미 변질되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정은 어지러운 사회를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당하며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정 안에는 혈연관계의 부모와자식이 있는데 이 가정은 철저하게 가정의 윤리와 도덕과 예의와 범절을 지키지 않으면 하루라도 지탱되어질 수 없는 파괴된 모습을 드러내고 맙니다.

오늘은 ○○번째 맞이하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머니 주일로 지켜오던 이 예배가 국가에서 어머니날을 어버이 날로 변경하므로 교회에서도 어버이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국가에서 변경했지만 이미 성경은 4천 년 전부터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교회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시대에 흐름을 따라 흔들려가는 어버이 섬기는 일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한 가정의 자녀 된 도리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하나님 자신과 또 우리들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이 율법에는 율법의 핵심을 이루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계명과 인간과 인간관계를 다루는 계명입니다. 그 중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은 제5계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제5계명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부모공경에 대하여 무어라 말씀하시고 계시며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자녀된 자로서 또 부모 된 자로서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1. 부모공경은 명령입니다.

명령이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더군다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명령은 부모의 명령도 아니고 모세의 명령도 아니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제5계명이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으로서는 첫 번째 계명이라고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6:2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죽여 마땅할 죄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입니다.

성경은 부모 공경에 대해서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고 계시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17절 말씀을 보면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죽여도 되고 안 죽여도 된다는 불분명한 입장이 아니라 반드시 죽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혹독하게 무서운 말씀입니다. 성경은 죽이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1:18-21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참으로 끔찍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를 타인이 아닌 부모의 손으로 멱살을 끌듯이 잡아다가 장로들에게 보이고 아뢰면 보고 듣는 성읍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여지없이 죽이라는 것입니다.

3. 성경은 하나님께 행한 잘못과 부모에게 행한 잘못을 동일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레위기 24:15-16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영적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치 않는 죄 부모만을 거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죄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는 교훈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요 그 권위에 불순종이나 거역으로 도전하는 자녀는 부모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악으로 관주한다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불순종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가 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치 않는 불효는 죽음으로 밖에 다스릴 수 없는 중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높고 높은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권위 앞에는 세상 모든 권위가 굴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이 주신권위라는 점에서 자녀들이 그 앞에 굴복하고 순종하며 공경함으로서 부모를 섬기며 또 그 일로 하나님의 권위와 부모의 권위를 동시에 인정해 드리기를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 가정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 가정의 원리와 원칙들을 무시해 버리고 시대의 풍조와 세상 흐름에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떠 맡겨두고 방임한 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와 원칙은 구시대 발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도 이 진리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지켜져야 할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4. 부모공경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등하게 공경해야 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나라는 가부장적인 제도 아래서 가정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사람 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여자의 영혼은 반쪽인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교적인 전통 아래 살아오면서 여자는 함부로 바깥출입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아내는 남편에게 있어서 주종관계처럼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상은 유대나라의 전통이었지 하나님 안에서 나온 제도나 사상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은 증명되어질 만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성경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려우나 원어 성경이나 영어성경에는 이를 분명히 밝혀낼 수 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성경 구절이 바로 출 20:12절 말씀과 레위기 19:3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부모라는 낱말이 {아브}와 {엠}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영어성경 NIV에서는 {Hono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so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라고 되어 있으나 레19:3절은 {Each of you must respect his mother and father, and you must observe my Sabbaths. I am the Lord your God.}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해석은 구구하지만 공통적으로 해석하기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번씩앞 뒤 순서를 바꾸어 기록하고 있는 것은 부모를 동등하게 공경하고 동등하게 경외해야 한다는 진리를 표현하는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부모는 자녀들에게서 공경 받을 만한 신앙과 덕스런 행위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1. 부모는 자식 앞에서 부모 공경하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공경은 부모가 자녀를 향하여 윽박질러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자라면서 저의 부모님이 할아버지를 대하시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74세의 연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셨는데 세상을 떠나시기 전 만 7년간을 중풍과 더불어 노망기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대소변은 물론이거니와 중풍까지 겹쳐 수족을 제대로 놀리지 못해 식사를 누군가가 떠 먹여 드려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저를 사랑해주신 할아버지의 식사를 대소변 냄새와 특이한 악취가 나는 방에 들어가 약 4년 동안 먹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옷과 이부자리가 대소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빨래를 가지고 1km나 떨어져 있는 저수지 둑에 가셔서 얼음장을 깨고 깨끗하게 씻어 오시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 보고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처럼 부모를 잘 섬기신 아버지나 어머니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물질보다 더 귀한 부모공경의 정신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고려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나이든 노인 부모를 먹을 것과 함께 생매장하기 위해 지게로 짊어지고 산에 가서 내려놓고 돌아서려할 때에 함께 간 어린 아들이 {아버지 왜 지게까지 놔두고 가나요?} {이젠 지게는 필요 없지 않느냐?} {아니에요. 아버지가 나이든 노인이 되면 나도 이 지게로 아버지를 이곳까지 지고 와야 되니까 이 지게는 가지고 가요.} 라고 했다는 옛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린이 때문에 고려장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까? 부모가 하는 대로 자식은 배운다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은 부모가 요구해서 또 명령해서 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자식 앞에서 부모가 부모에게 본을 보이는 것을 통해서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게 되는 원리를 배우게 되는 것뿐입니다.

2. 부모가 참된 신앙을 자녀에게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부모공경 하는 일은 부모인 우리가 자식인 너희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시고 가정제도의 하나로서 자녀 된 자들을 향하여 명령하시는 것임을 신앙으로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도 거역해서는 안 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자녀가 신앙을 통해서 깨우치면 부모공경은 신앙적 차원에서 잘 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다윗왕의 가정과 히스기야의 가정의 자녀를 대조해 보면 금방 알 수 있게 됩니다. 믿음 좋은 히스기야가 자식을 어떤 모습으로 길렀을까요? 성경에는 히스기야가 아들 므낫세를 어떻게 길렀는가 하는 문제는 기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히스기야의 생애를 통해서 한두 가지 정도는 실제에 가깝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42세 때에 므낫세를 낳은 히스기야가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고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했다는 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0:5-6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사력을 다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부르짖어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을 받았습니다. 그때 나이 39세였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난 42세에 아들므낫세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신앙이 식어지고 다시 교만한 왕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사는 가운데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받으며 므낫세는 12살이 되었고 히스기야는 54세로 열조의 품으로 돌아가 아버지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아버지의 시체가 무덤 속에서 부패하는 속도보다 더 무섭게 온갖 우상을 다 섬기며 부패된 길을 걸어갔습니다. 12살은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12살 시절의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믿음을 키우기 위해 부모의 곁을 떠나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대면하면서공부하는 모습 말입니다. 그리고 소년 목동 다윗을 연상해 보십시오. 그리고12살 난 믿음의 자녀들에게 우상 앞에 절하라고 한번 해보십시오. 믿음이 있는 자녀들이 과연 절을 할까요. 그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순종을 할까요? 결코 12살은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신앙적인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역대하32:24-25을 보면 병고침 받고 난 히스기야의 신앙상태는 교만해졌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믿음이 사라져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알맞은 상태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솔로몬을 교육하는 모습을 보면 임종의 순간에도 병상 머리맡에 아들을 앉혀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의 보는 데와 우리 하나님의 들으시는 데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역대상28:9-10) 그런 아들은 나라를 부강하게 했고 부모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 놀라운 일을 하였던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솔로몬과 같은 자녀들이 가정에서 배출될지언정 결코 므낫세와 같은 자녀를 배출하는 비극된 일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자녀의 마음을 노엽게 하면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본문은 아니지만 에베소서 6: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자녀의 마음을 부모가 노엽게 하면 자녀는 부모를 공경할 마음보다는 분노의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명령했기 때문에 막연히 부모순종과 부모공경을 자녀에게서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자녀의 노여움을 사게 하여 하나님이 주신 부모의 권위를 손상시켜 자녀들로부터 공경 받지 못하는 요인을 부모인 우리가 제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노엽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못 배웠으니까 너라도 많이 배워야 한다.”고 하여 과다하게 공부를 요구하면서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부모의 체면도 살려 줄 수 없느냐, 너 때문에 우리는 이제 창피해서 못살겠으니 이사를 가야 된다”라고 하여 자녀들의 입시문제로 부모의 체면유지를 걱정하여 자녀를 노엽게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는 말씀과 같이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가장 큰 부모 공경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어른들은 말합니다. 경로(敬老) 우대증은 격노(激怒) 우대증이 된지 오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웃고 넘기지 못할 풍자입니다. 더군다나 노인들은 지혜자라고 격찬하는 욥기 12:12절의 말씀이 있는데 현대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노인들이 이야기하면 아예 구시대 발상 적이고 구석기 시대 유물 같은 소리라고만 일축해버리고 마는 시대입니다.

물론 우리의 부모님들은 유교의 폐쇄적인 풍습 아래서 자란 환경적 요인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도 빨리 변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오신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풍조를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아직도 자식들을 향해 옛시대의 전통적인 효도관 그대로 따라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젊은 자녀들은 그런 사고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라며 이를 따르거나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공경에 대한 문제는 비록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마가복음7:10-14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율법을 잘 준수한다는 바리새인들을 보고 부모 섬기는 문제로 책망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고르반 의식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는 고르반 의식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고르반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봉헌할 제물이나 돈은 누구에게도 함부로 줄 수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의식을악용하여 노부모가 찾아와서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이미 고르반 의식을 위하여 선택된 것이므로 도와 줄 수가 없다고 하면서 부모를 외면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고르반 의식을 행한 제물과 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은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許)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7:11-13) 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의 부모를 잘못 섬기는 기류를 막을 곳은 교회 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마저도 부모 섬기는 일들에 대한 교육과 신앙지도를 포기한지 오래되어버렸습니다.

아예 {세상이 그렇거니}하면서 방관만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무능력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처럼 연약하게 신뢰해서 하나님의 어떤 기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걱정이 앞서기 전에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부모의 권위를 실추시켜 버린 잘못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큰 부모공경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요한복음 19:26-27절을 보면 주님의 효도에 대한 지극한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노년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일찍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것이라고 성서학자들은 추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0세까지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3년간은 공생애의 기간으로 보내시므로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늘 기억하면서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활동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임종을 앞두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제자들 가운데 요한을 불러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어머니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공경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제자 요한은제자 중에 가장 부요한 제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머니를 물질로만 섬기려 했던 일이 아니라 물질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는 제자 요한과 어머니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혈육의 동생들에게 부탁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부탁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영혼구원에 대한 막중한 문제를 생각하고 제자 요한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 때 혈육의 동생들은 아직 예수를 구주로 믿지 못하고 골육으로서 육신의 형으로만 알고 있었던 때입니다.

세 번째로는 마음으로 가장 큰 위안을 주려는 효도의 모습입니다. 신앙인은 신앙인이 그 마음을 가장 잘 압니다. 요한은 3년간 제자로서 훈련을 받으면서 누구보다 더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가장 잘 아는 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그의 옆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 예수님에 대하여 서운한 말을 한다든지 섭섭해 하시면 예수님의 입장을 잘 이야기해 드리므로 가장 친근한 위로를 해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같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지녀야할 자격입니다.(레19:3)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부모가 나를 낳아준 은공에 보답하기 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부모공경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엡6:1-3)

그러므로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치 못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부모를 공경하는 책임을 잃어버린 가정은 하나님의 질서와 가정 윤리를 이미 파괴시키고 있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는 가정이요 이미 행복을 잃어가고 있는 가정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여러분의 자녀들 위에 부모공경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공경을 통해 얻게 되는 땅에서 잘되는 일과 장수의 축복이 가정 위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버이주일 설교 모음 ( 곽선희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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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설교 3편[곽선희 목사]모음

어버이주일설교 3편[곽선희 목사]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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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에베소서 6:1-4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 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며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된 모습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사랑’이라고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상 사랑은 차원적으로

다르고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을 헬라 사람들은

아주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런 화끈한 사랑,

이것을 ‘에로스’라고 합니다.

남녀간에 사랑, 애정이라고 하는

사랑을 이렇게 에로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에로틱’ 할 때는,

‘에로티시즘’ 전부 그런 뜻을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스토르게’ 라고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연적인 사랑입니다. 혈연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이 부모의 사랑은

철저한 끈질긴 피로 연결된 그러한 사랑입니다. 이걸 스토르게라고

그러고요 그리고 친구간에 사랑, 이 수평적인 사랑, 심지어는 나라를

사랑하든 형제를 사랑하든 친구를 사랑하든 ‘필아델피아’ 혹은,

필아델포스 이렇게 ‘필’자를 붙여서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친(親) 이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신 사랑, 절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그것을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에로스에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서 자라고

필로스에서 성숙되고 아가페에서 완성된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이것이 인간입니다. 한평생 우리는 사랑 속에

살 뿐더러 사랑을 배우며 삽니다. 사랑 공부하며 삽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배웠느냐

몇 학년이나 되었느냐 얼마까지 배웠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인간 됨이란 사랑 이해의 수준에 있는 겁니다.

아직도 에로스적인 데 매여 있습니까? 아니, 필로스든지 그런데 매여

그 정도입니까? 아니면 끈질기게 스토르게만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그건 그 정도입니다. 사랑 이해가 높아져서 아가페를 이해해야 합니다.

희생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아가페적인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하게 될 때,

그게 바로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에 응답해야 됩니다. 자, 이제 보세요.

한 남자의 사랑에 응답해서 여자가 응답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 부모님의 사랑에 응답해서 효자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친구의 사랑에 진실하게 응답해서 친구가 되고,

신의를 지키는 인간관계가 됩니다. 또 인격이 되어갑니다.

자 이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에 응답해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응답하는 것은 곧 베푸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알고 이 사랑을 또 실천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서

자식을 사랑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서 남편을 사랑합니다.

친구의 사랑 속에서 친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응답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가파테알렐루스 카도스 헤가페사 휴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랑이 아가페다.

“아가파테알렐루스” 아가페의 사랑을 하라. 베풀어라.

여러분, 여러분 생에 ‘이것은 아가페였다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을 한 것이다’ 몇 번이나 있습니까?

몇 번이나 그런 사랑을 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사랑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저는 북한에 갈 때마다 좀 듣기 거북한 인사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만찬을 할 때에 꼭 서서 정식으로 아주 엄숙하게 연설을 하듯이

그렇게 인사를 합니다. 그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꾸 바뀌니까 그들이 나에 대한 관계를

다시 수립을 해야 됩니다. “동무, 아버지가 우리 공산당원에

의해서 총살되었는데 그 때 동무가 옆에 있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하여 오셨으니 조국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이럽니다. 가끔 묻습니다. “목사 동무는 분명히

우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왜 이 북조선을

그렇게 도우려고 애를 쓰느냐?” 그럴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당신들과 다른 것이요. 우리는 원수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여기에 이유 없습니다. 당신들의 아무 대가성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 사랑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정말 아가페적 사랑을 해 본 일이 있습니까?

거기서 내 인간의 인간됨의 수준은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높은 사랑, 하도 귀한 사랑을 받고 그것을 배신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미움받고 미워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그러나 사랑 받고 미워하고 특별히 고상한 사랑을 받고 배신한다면

죽어 마땅한 것이죠. 아주 어렸을 때

제 어머니가 제게 일러준 이야기입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정성을 다해서

그 힘든 일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서 이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답니다.

이 아들이 보고싶어 못 견디겠어요. 편지도 쓸 줄 모르고 요새처럼

전화도 안됩니다. 그저 아들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아들을 보러

서울로 왔는데,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문에 서서 하루종일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자기 애인하고 같이 손을 잡고 나오고 있더랍니다.

반가워서 “얘 아무개야!”하였더니 그 애인이 남자에게 묻기를

“저 여자 누구야?” 이 남자, 이 아들 하는 말이 “어, 그 우리 집에

오래 전에 있던 식모야”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그대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만요. “사랑을 배신하지 마라.”

사랑에 대한 배신은 죽어 마땅한 거예요. 그 아들이 살아서 뭘 하겠어요.

성경은 이런 죄를 무섭게 책망합니다.

한 200년 전에 중국에 선교를 할 때, 아시는 대로 중국은 그 당시 유교,

유교 문화에 꽉 젖어 가지고 있는데 이제 기독교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는데 그게 마음이 열리기가 어렵죠. 그럴 때에 그 때에 만들어진

전도지를 보니까 그 전도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높은 효도의 종교입니다”

그랬어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21장17절을 인용합니다.

부모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출애굽기 21장15절,

레위기 20장9절에는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무조건 쳐죽여라.

신명기 21장 18절로 21절에 보면 패역한 자식,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고

징계도 듣지 않는 자가 있거든 공회에 끌고 가서 증거를 내고 끌어내서

돌로 쳐죽여라 그랬어요. 패역한 자식은 죽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악을 제하라.

이 무서운 성경구절을 전도지에 써 놓았어요.

그리고 다시 긍정적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아버지가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그 때에 나이, 이삭이 스물 일곱살이에요.

아버지 나이 127세. “너를 재물로 바치란다” 할 때에

“100세가 넘더니 노망했구려” 충분히 그럴 수가 있죠.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공경하고 제단에 올랐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절대 순종한 것이요.

이것이 기독교다 그것이에요.

그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데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기독교는 철저한 효도의 종교다 이렇게 전도를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문이 열린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두 가지입니다. 순종이란,

굴종이 아닙니다. 복종이 아닙니다.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겁니다. 공경이라는 것은

티마라고 하는 말은 특별한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지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요새는 부모를 불쌍히 여기는 자식들이 많아요. 안되었다 싶다나요.

이런 망언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하나의 친하는 친분정도의 그런 사랑을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높이 섬기라. 낮춰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수평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높이 사랑하는 거예요. 공경하라.

높이 섬기라 이거예요. 이것은 존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옳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교회에서도 어머니 주일을 지킵니다.

이 어머니 주일을 지킬 때에 늘 학생,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중요한 Illustration이 있습니다.

중요한 예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미국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것은 중요한 실제적 교훈이기 때문이죠.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고

잘 아는 조지 워싱턴, 1대 대통령 워싱턴이 어렸을 때 그의 꿈이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마침내 선장이 되고 바다를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바다의 사람이 되겠다 생각을 하고

우선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짐을 다 꾸려가지고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러 나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합니다. 줄줄 우는 겁니다.

워싱턴은 그 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하고 “짐을 내려라.” 다시 짐을 풀어놓고 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에 유명한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떠났더라면

그저 잘해서 선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다 준비했던 것도 버리고 어머니를 따랐습니다.

왜요? 어머니가 나보다 지혜로우니까.

나보다 어머니에겐 경륜이 있으니까. 어머니의 명예를 높이고

어머니의 인격을 높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어요.

그를 높이고 높여 순종한 것이에요.

그리고 공경이란 것은 그를 높이는 것이요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입니다. 내 아버지는 이런 분입니다.

그는 이렇게 훌륭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런가 하면 공경이란

대가성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공경해서 무얼 받아내자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거래가 아닙니다. 질투 없는 사랑은 오로지 효(孝) 하나 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올시다.

또한 이 사랑에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에 응답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 아버지의 기도, 그것을 알고 그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많더라도 아니요,

그의 소원을 우선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선합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의로운 것입니다. 때로 부모님이 “공부하라 공부하라”

입버릇처럼 하지만은 알고 보면 거기에는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제 때에 공부를 못해서 이렇게 늘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고로 너는 공부하라’ 이것입니다.

그래, 이 말이 이렇게 듣기 싫었습니다.

그 속에 소원이 있단 말입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어요.

또한 부모님의 소원 중에 가장 큰 것은 건강입니다.

여러분, 병들지 마세요. 병들면 불효자입니다.

건강을 잘 지켜서 건강해야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지,

앓아 누워있는 자녀는 불효자입니다. 그것도 내 잘못으로 인하여

내가 병들었다면,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부모님 앞에서 한숨쉬는 것 아니에요.

죽기 전에는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님 앞에 탄식하고 괴로워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마음에 기쁨을 드려야겠으니까요. 그의 소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특별히 정직하게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죠.

효는 가정 교육의 기초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할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려장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아버지가 나이 많은 어머니를

내다 버리려고 지게에다 태우고 지게 지고 산으로 가면서

아들을 데리고 갔어요 꼬마 아이를. 깊은 산에다가 놓고

음식을 좀 내려놓고 요거 다 잡수시고 돌아가세요.

아 그리고 지게를 놓고 돌아오려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 그 지게 가지고 가지.” 지게를 거기 놔두고 가려고 했더니

“지게를 가지고 갑시다” 그래요. “왜냐?” 그러니까 “아버지 늙은

다음에 또 지어다 놔야지. ” 그래서 아버지가 ‘아이쿠 안되겠다’

생각하고 그 어머니를 다시 업고 돌아왔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요새는 아이들이 효도를 하려해도 효도하는 방법을 몰라요.

효도하는 것을 못 보았거든. 언제 효도를 보았나?

못 본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못 배운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자녀가 말을 안 듣거든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했나 생각해 보세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어요. 잊어버려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 거예요.

오늘 성경말씀에는 장수하게 되고 형통하리라.

이건 통계학적 진리예요. 효도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요.

효도하는 가문이 장수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지혜로 가정으로 세계적으로 형통합니다.

이스라엘의 강한 점은 그 전승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전승의 뿌리는 효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경, 그것이 바로 인격의 뿌리입니다.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가 없어요.

공경을 몸에 익히지 못한 사람 공경과 순종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영영 구제 불능이에요. 마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부모란 네가지를 말합니다. 낳아준 부모,

나를 가르쳐준 선생부모, 나를 지켜주시는 왕부모,

그리고 내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는 목사부모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란 스토르게만이 아니에요. 이런 네가지 부모 속에 있어요.

부모에게 순종하라 순종의 덕을 익히고 비로소 인격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됩니다. 이것이 가풍이 되고

가문의 전통이 될 때 자자손손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고

건강하며 형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를 항상 새롭게 일깨워

주심에 감사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순종의 덕을 몸에 익히면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가정들이

효의 가정이 되고 주의 약속된 복을 다같이 받고 또 이어가는

거룩한 가정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②————

▶ 한 아버지의 통곡 ◀

사무엘하 18:28-33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 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 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 이다

29

왕이 가로되 소년 압 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 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 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 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30

왕 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 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 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 나이다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 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 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우리 나라에 젊은 가수 신 해철이라고 하는 가수가 있는 데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 중 에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제 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의 노래가 반주가 너 무 크고 박자가 빨라서

가사 전달이 잘 안됩니다마는

이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노래 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 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 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의 어느 곳에도 이제

더 이상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 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 내와 다 커버려 집을 나간 자 식들…..”

그런 노래입니다.

지난 4월 23일 날자, 우리 나라 신문에는 나지 않았습니다.

“U. S. Today”라고 하는 미국 신문에

난 것을 보고 가 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금년 정월로부터 3월까지 한 국에서 2,248명이 자살했습니 다.

2,248명의 아버지가 죽었 습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세운 아버지 상이 어떻습니 까?

이 아버지에 대한 이미 지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 변 한다고 합니다.

네 살 때는 주로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전지전능하다.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다. 힘 도 참 되게 세다.’

생각을 합 니다. 열 두 살이 되면은

‘아 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 열 네 살이 되면 ‘생각하는 것이 모두 구식이다.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하고, 스물 한 살이 되면 ‘아버지는 영 골동 품이다.’

스물 다섯살이 되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제법 아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생 각을 합니다. 서른 살이 되 면은 내가 결정할 이 문제를 놓고

‘아버지에게 의논하고 싶다.’ 오십 세가 되면

‘역시 아버지는 훌륭했다.’

육십이 넘으면 ‘나는 아버지만 못하 다.

아버지는 정말로 훌륭하 고

모든 것을 아는 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 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세운 아버지 상만큼

여러분의 존재는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격하시키면 내 자신 이 또 격하됩니다.

아버지를 높은 분으로 높이는 순간 내 존재의 위치도 높아진다는

것 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버 지 이미지라는 것은 요새 와 서

형편없이 땅에 떨어졌습니 다.

그러나 여러분 믿거나 말거나 사실입니다.

아버지 이미지에서 우리는 공의와 선 과 질서를 배웁니다.

우리는 어머니 이미지에서 사랑을 배 우고, 은혜를 배우고,

자비를 배웁니다.

이렇게 배워서 한 평생 그 배운 바대로 살아가 는 것이올시다.

여기서 그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하나님 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 버지라는 단어를 하나님을 설 명하는 계시적 용어로 사용합 니다.

그렇기 까닭에 우리가 가진 Father Image 아버지 이미지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아버 지가 엄했답니다.

너무 엄해 서 그저 재깍하면 때리고 호령하고

폭군적인 아버지였다 고 기록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만 나와도

그 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거예 요.

그래서 루터의 신학을 연구할 때는 ‘Wrath of God’,

하나님의 진노 개념을 빼고는 루터를 연구할 수가 없습니 다.

하나님은 아주 무서운 하나님으로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그가 지닌 아버지 인상에서부터 그 러한 철학, 그러한 신학,

그러 한 신앙구도를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 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서는 탕자의 아버지로

하나님 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 님은 이러한 분이다. 탕자의 아버지를 보라.

이 탕자 비 유에서 나는 늘 생각을 합니 다마는

그 아버지 참 훌륭한 아버지요.

좋은 아버지입니 다. 보세요.

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내 놓으라는 겁니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왜 돈을 주어서 집을 나가게 했나?

안 주면 못나갈 것 아 니요.

뻔한 일인데 왜 유산 까지 나누어주었던가요?

그 아들이 그 돈 내 놓으라고 얼 마나 못 되게 놀았겠습니까?

성경에 없지만 알만해요. 그 렇지 않아요? 얼마나 못 되 게 놀았으면

“그래그래. 나 죽은 다음에 줄려고 했지만 까짓 거 지금 가지나

그때 가 지나 마찬가지다. 가지고 나 가봐라.”

아버지 세상 떠나 기 전에 유산을 잘라서 줍니 다.

그리고 내 보냅니다.

천 하에 못된 자식에게 왜 재산 을 주어서 내 보냈는가 말이 요.

아버지의 마음은 이러했 을 겁니다. ‘이 돈 다 없애도 좋다.

뭐 돈이 대수로운 거 냐? 제발 다 없애도 좋으니 깐 착한 아들이 되어

돌아와 서 아버지라고 불러다오.’ 이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집 을 내 보냅니다. 나가서 무 얼 했는지 뻔히 알잖아요.

어떻게 될 거 환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아버지는 그 아 들을 기다립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대로 기다립니다.

꼭 돌아올 줄로 믿고 기다립 니다.

살아올 줄로 믿고 기 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세 요.

아들은 아버지를 못 알 아볼 때 오히려 아버지가 아 들을 알아봅니다.

상거가 멀 때 알아보고 나가서 끌어안는 아버지를 보세요.

이것이 아 버지요.

이 못된 자식을 무 엇이라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 까?

또 그를 영접합니다.

잔치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말던 내 아들이 살아왔 다.

잃었다 얻었다 죽었다 살았노라

그리고 잔치를 베푸 는 그 기뻐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 역시 탕자의 아버지이 기에 탕자임이 분명합니다.

또 하나의 탕자입니다.

구약으로 올라가보면 다윗 이라고 하는 아버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아버지로 대표적인 분으로 오 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여러 분 맥락을 아시지 않습니까? 다윗은 본래 목동이였습니다 마는

사울 왕에게 발탁되어서 충성된 장군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울 왕을 위해

서 충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서

그는 쫓겨나야 했고 광야 를 헤메고 고생을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서 유대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와 서는 또 아들이 아버지를 배 반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성경맥락을 연구해 보면은요 압살롬은 셋째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형 둘이 죽었습 니다. 실질상 지금 첫째아들 입니다.

맏아들이요. 그 인 물도 잘났답니다. 출중해서,

머릿결이 좋아서 아주 축 늘 어졌는데 모두가 칭찬하고,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었답니 다. 온 백성이 추앙하는 그 런 아들이었어요.

인기가 있 는 아들이요. 가만히 기다리 면 아버지 죽으면서 왕이 될 텐데

무엇이 바쁘고 초조해서 아버지를 배반하는 겁니까? 악당들과 작당을 해서

이 아 버지를 죽이겠다고—. 아버 지는 그대로 왕의 보좌를 내 놓고

광야로 피난길을 떠납니 다. 그리고 정처 없이 방황 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두 대열에서 전쟁이 납니다. 그 러나 아버지는 계속 물어봅니 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 하냐?

내 아들 압살롬이 무 사하냐? 불효는 고사하고

이 런 패륜아들이 어디 있습니 까?

세상 어느 역사에 이런 아들이 있단 말입니까?

용서 할 수 없는 이런 나쁜 아들이 지만도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 어요.

모든 사람이 다 대적 으로 생각했고, 원수로 생각 했지마는

아버지는 여전히 저 가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하냐?

그가 죽 었습니다. 그가 자랑하던 머 리채가 나뭇가지에 달려서

매 달려 있는 것을 장군이 찔러 서 죽였습니다. 통쾌하게 죽 었습니다마는

이 죽었다는 말 을 아버지에게 못합니다. 이 거 얘기했다가는 자기도

살아 남을 것 같지가 않아요.

그 만큼 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침내 구스사람이 기어이

“당신 아들이 죽었소”라는 비보를 가지고 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는 웁니다.

“내 아들 압살롬 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대 신하여 죽었다면 좋았을 것 을…

“하면서 계속 통곡을 하 는 아버지의 통곡을 볼 수 있 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버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천하에 죽일 놈이요. 못 된 사람이요.

패륜아라고 했 겠지만, 원수라고 했겠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했습 니다.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왜 그는 피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까? 왕의 보좌를 내놓고

피난을 가는 이유가 뭡니 까?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에 신앙적으로 이 사건을 받 아들인 겁니다.

왜냐하면 그 가 밧세바라는 여자에게 취해 서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일 이 있거든요. 자기 밑에 있 는 충성된 장군을

그 아내를 뺏기 위하여 죽였습니다.

이 사건을 나단선지자가 책망하 시면서

“너의 집에 칼이 떠나 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 월이 흘렀습니다.

형제들간 에 다투면서 죽이는 일이 있 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 고요.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강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고요.

그가 피 난의 길을 나설 때에 시므이 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 저 주합니다.

옆에 있던 장군이 그대로 칼을 들어서 목을 내 려치려고 합니다.

“아서라. 그러지 말라. 하나님이 저를 저주하라. 하기 때문에

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앞에 서 받는 채찍이요.

심판이니 까 나무라지 말라.”고 그리고 훌쩍 떠나서 정처 없는

피난 의 길을 광야로 들어갑니다. 이대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 리고 그 하는 말 좀 보세요.

“자, 일어나 도망가자.”

그래 도망갑니다. 다윗편에 장군 이 많습니다. 얼마든지 압살 롬과

그 일당을 전멸할 수 있 습니다마는 그리하지 않았습 니다.

그리고 보좌를 놓고 그는 도망갑니다.

왜요? 중 요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 다.

이 아들에 이와 같은

패 륜이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았 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게 아 니라, 내 죄 때문에 저 아들 이 이러한

아들이 되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 려 아들이 어렸을 때

잘못된 것을 보았고, 내가 좋지 못한 본을 보여 주어서 그 결과로

이 같은 일이 있다고 믿고

있 기 때문에 그는 아들을 나무 라지 않았어요.

‘너도 피해자 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집을 나서게 된 겁니다.

어떤 집의 아들 아이가 속 을 어지간히 썩여요. 말썽도 많이 부리지만

공부도 안하고 집을 나가고 걸핏하면 가출이 에요. 그의 어머니는 속이

상해가지고 심지어 제게까지 찾아오면서 너무 답답해 가지 고

“또 가출했습니다. 또 말 썽입니다. 이 자식이 언제 사람될까요?

그저 괴로워하 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자

“이 젊었을 때 이 중요한 나이에

공부 안하고 저러고 다니면 어떻합니까?”

그러고 발발 떱니다마는 아버지는 태 연합니다.

아무 말이 없습니 다.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말없는 것이 속상하대 요.

“책임은 나 혼자 지는 거냐? 어째서 당신은 말이 없느냐?”

아버지는 여전히 말 이 없습니다.

“아들이 나갔 어요!”

그러면

그래? 그랬 구먼.”

“돌아왔어요”

“오.. 그랬구먼.”아무 말이 없어요.

왜? 그 아버지는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 속 을 어지간히 썩였거든요. 이 정도가 아니었거든요.

너무 속을 썩인 것을 생각하기 때 문에 자식을 보면서

자기 모 습을 보는 거예요. 그런고로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것 이 다윗의 모습입니다. 아버 지의 모습입니다.

자녀의 모 습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보 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참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쓰리고 괴롭지마는 할 말이 없습니다.

말 없는 아버지라 고 나무라지 마세요.

저 속 은 더 썩고 있는 겁니다.

이 걸 잊지 말아야 돼요. 그래 서

“일어나 도망가자.”

그랬 어요.

“일어나 도망가자.”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이 있 습니다.

자, 아들을 죽여서 해결하겠습니까?

내가 죽어 서 해결하겠습니까? 다윗의 입장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 요.

저 아들을 죽이면 아들 을 죽인 아버지가 됩니다. 그냥 앉아 있다가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면 아들을,

아버 지 죽인 아들을 만드는 겁니 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조용히 피난 의 길을 떠납니다.

이런 전해지는 중요한 얘 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공자 선생님의 제자 증 자라고 있는데

그 증자는 효 자로써 소문이 난 분입니다.

어느 날 친구 한 사람이 공자 에게 증자에 대해서 말했습니 다.

“증자는 이렇게 효도하 는 분입니다.”하고 효도한 한 사건에 대해서

설명을 했더니 공자 선생님은 효도는 고사하 고 노발대발합니다.

“그런 불효자가 있나?”

그러더랍니 다. 무슨 사건이냐 하면, 증 자가 어떤 날 아버지와 같이

참외밭을 맸어요. 참외밭을 매다가 실수해서 참외의 뿌리 를,

참외의 넝쿨 뿌리를 끊어 버렸어요. 아버지가

“이 따 위로 하면 되느냐? 아니 김 맨다고 하다가 참외를 죽였잖 아.”

그래 가지고 얼마나 나 무라는지 때리기 시작을 했습 니다.

증자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잘못했고 화가 나는 아 버지니까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리십시오. 화가 풀릴 때까 지 때리십시오.’

하는 마음으 로 맞았습니다. 아 거기 몽둥 이가 있었어요.

몽둥이로 두 들겨 팼습니다. 결국은 기절 했습니다.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까 일이 이렇게 됐거든 요.

아버지가 화가 나 있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 그는 ‘내가 잘못한 것이니까 아버 지 화를 풀어 드려야지.

그 저 때리고 싶은 대로 때려서 그래서 화가 풀어질 수 있다 면

얼마든지 때리십시오.’하는 마음으로 그는 오히려 아프지 도 않고

마음도 괴롭지 않습 니다하는 뜻으로

거문고를 치 면서 노래를 불렀대요.

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효도 아니냐?”

해서 얘길 했 더니 공자 선생님은 아니라 고, 나쁜 놈이라고

“증자 자 네 이리 오라우.”

불러 놓고 얘기를 합니다. 순 임금의 이 야기를 하는데

“봐라, 중국 역사에 나오는 순 임금은 효 자다.

그는 그 아버지가 못 되가지고 그저 발끈하면 화를 내고 발끈하면

때리는데 때릴 때마다 그저 자 고마운 마음 으로 맞았다.

그러나 때리다 가 아버지가 옆에 몽둥이가 있어서 몽둥이를 들면

그러면 재빨리 도망을 갔다. 왜 도망 간 줄 아느냐?

내가 이제 아 버지로부터

몽둥이로 맞아서 피가 나면, 상처가 나면

나를 때려 놓고 그 다음에 아버지 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뒤에 아버지가 얼마나 후회하 며 마음이 아플까?

그 생각 을 해서 도망갔느니라. 어느 쪽이 효자냐? 너는 불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때리는 사람 앞에서 ‘나 죽여라.’

하 면서 맞는 거 맞아 싸요. 왜 때리는 사람을 만들어?

왜 나 쁜 사람을 만드느냐 이 말이 에요. 생각해 보세요.

때릴 때는 재빨리 도망가서 착한 사람을 만들도록 힘써야지

부 모가 화났기로서니 화 풀릴 때까지 맞겠다고

대드는 요런 사람이 나쁜 거죠.

자, 생각해 보세요. 다윗 이 왜 떠났느냐구요?

내가 여기에 있다가 아들을 죽이겠 습니까?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여기서 내가 죽으면 천하에 용서할 수

없 는 죄를 아들로 짓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를 죽 인,

죽이는 아들을 만드는 거 예요.

내가 안 죽으면 못 죽 이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 는 피난의 길을 떠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들은 악 합니다마는 그러나 더 악한 아들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처 없이 어디 가서 죽더라 도

이 길을 떠나야 했다는 말 입니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 입니다.

여러분, 불효자 자식 을 만드는 것도 때로는 부모 라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그래 오늘 사무엘하 18장 5절 에 보면

이 전란속에서 계속 다윗은 말합니다.

“나를 위 하여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 하라.”

이 불효자식, 이 패륜 자식을 놓고도

“나를 위해서 내 아들을 너그럽게 대하라”

고 그럽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아들 이 죽었을 때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는 기다린 겁니다.

이런 와 중에서 돌아오기를 믿고 있었 습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참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 었습니다.

참 아들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 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 음이었습니다.

1997년 8월 31일자에 중앙 일보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미화원을 하고 있는 아버지인 데, 청소부란 말입니다.

어떤 날에 보니까 그 아들이 아주 높은,

고급 브랜드 청바지를 입었어요.

자기가 돈 준 일이 없는데… 그래서

“너 어디서 나서 이것을 옷을 입었느냐?”

호되게 나무라니까 사실대로 불었습니다.

“전철역에서 남 의 돈을 훔쳤습니다.”

아버지 는

“그래,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기로서니 남의 돈을 훔쳐 서야 되느냐? 이놈아!”

붙들 고 울고

“그래선 안 된다.”

이걸 끌고 파출소에 갔어요. 자수했습니다.

자술서를 쓰면 서 보니까 이게 처음이 아니 에요.

그전에 또 한 일이 또 있었어요.

이걸 아버지가 알 게 되어 너무 기가 막혔어요.

“그래, 내가 가난하고 어려워 서 옷을 못 사준 죄다.

그걸 입고 싶어서 했겠지만 어째 이럴 수가 있느냐?

이놈아 그래서야 되느냐?”

하면서 그 냥 죽어버렸어요.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재판정에서 얘기했습니다.

“이놈에게 중 죄를 내려주세요.

이놈은 나 쁜 놈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중죄를 내려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재판정은 판사는

“무죄”

그랬습니다. 무죄선언을 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판사의 말 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처 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 절대로

잘못될 수 없음을 믿 고 있기 때문입니다.”

훌륭 한 아버지가 있으면 그 자식 은 잘못될 수가 없다 이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아버지 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세워 놓은 아버지의

위상만큼의 내 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③————

▶ 어버이의 즐거움 ◀

잠언 23:19-25

몇 해 전에 신문에 기고되었던 내 용입니다. 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스물아홉살에 그는 열네시간을 기 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부인이 산실에 들어가서 산고를 치르고 있을 때,

그는 문 밖에서 무려 열네시간을 기 다렸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려서

아 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리고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일곱살에 그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들어가서 우등상장을 타왔을 때 그 걸 액자를 만들어서 방에 걸어놓고

쳐다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해했다, 누렇게 바래질 때까지.

마흔 여덟 살에 자식이 대학을 입학한다고 입 학시험을 치르게 될 때,

이 아버지 는 직장에 나가기는 했지만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초조할 수가 없 었다. 생애에 있어서

가장 초조한 시간으로 기억된다하는 얘기입니다.

쉰세살에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아 버지 내의를 하나 사왔을 때,

쓸데 없는데 돈을 썼다고 일단 나무랐지 만은 밤이 늦도록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만져보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예순한살에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놈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 음을 짓고있는데, 나는 멀찍이 서서

나이 들었지만은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마음입니다. 그저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 있 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귀한 것 입니다.

유명한 기독교인인 맥아더 장군, 그의 ‘아들을 위한 기도’라고

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제가 이 시간 에 다 소개하지는 않습니다만은

“A Father’s Prayer”

by MacArthur 라 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첫마디가

“Build me a son”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십시 오.”라고 말이 시작되고 긴 기도문 이 있고

맨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 다.

“그리하여 나, 그의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속삭이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아주 유 명한 이야기입니다. 난 늘 이게 기억 이 됩니다.

“그리하여 나로 ‘한 생 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게 해 주십시오.”

보람과 의미가 바로 그 자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만이 어쩌면

남는 일이기 때문 에, 그가 세계를 위하여 위대한 일 을 많이 했지만은

그건 그렇고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 고 나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 니다. 그것이 바로 어버이의 마음 입니다.

한국사람은 역시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적 효의 개념이 있습니다.

이 것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다분히 유교적 사상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 가 젖었으니깐 그 속에서 가지는 생 각입니다만은

소위 한국적 효가 무 엇인가 한번 정리해 보십시다.

한 국사람으로서 우리 문화 속에서 생 각하는 효도,

첫째가

부모님을 장수 하도록 모시는 겁니다.

이유야 어 쨌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자식에 게 있겠습니까만은

부모가 일찍 세 상을 떠나게 되면 그건 자식 탓이 요,

그래서 자식은 죄인이 됩니다. 내가 잘못 모셨고,

내가 속을 썩여 드렸고 내가 어쨌고…… 그래서 장 례식에

가 보면 제일 많이 우는 자 식이 불효자예요. 나 때문에 돌아

가셨다고 가슴을 치는 거예요. 그 래서 그 상복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 의 옷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오래 살도록

모셔야 효자지 어쨌든 일찍 돌아가셨다면은 자녀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 됩니다.

그것이 바 로 한국사람의 효의 기본개념입니 다.

두번째는 편안하게 모시는 겁니 다.

그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또 거처하는 곳,

평안하게 특별 히 마음을, 마음을 평안하게 모셔야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 들이 이제 자식의 눈치를 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자식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하 고 싶지 않은 게 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말 세 마디가 있는데,

첫 째가 뭐냐 하면은 어떤 일이든지 아 프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발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 자꾸 아프 거든요. 아프다고 하면

자녀들이 귀찮을 까봐, 자녀들이 걱정할 까봐 아프다는

말하는 거 그렇게 싫다는 거예요. 어떻게든지 안 하고 싶은 데

그러세요. 이것이 부모님의 마 음이에요. 자식을 괴롭힐까봐…….

두 번째는

외롭다는 말을 하고싶지 않아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해요. 그러나 사실은 외로워요.

자 식이 아무리 많아도 외로운 건 외로 운 거죠.

그러나 내가 외롭다고 하 면 저들이 뭔가 어머니를 잘못 모셔 서

외롭다고 하지나 않나, 할까봐 그 말을 하고싶지 않은 거예요.

외 롭지만은 외롭다고 못 하는 게 부모 의 마음이에요.

세 번째는

배고프 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또 어 느 때 좀 궁진해서 뭘 잡숫고 싶어 도

혹시라도 귀찮게 여기지나 않을 까 해서 배고프다는

말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세 가지가 하고싶지 않은 말이요

조심스러운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입 니다.

이제 이 분의 마음속에 슬픔 을 드리고, 고

통을 드리는 것은 불 효입니다.

또 한국적 효도의 세 번째

개념은 가문을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그 래서 대를 이어가는 것이에요. 요 새 세계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비혼 이요, 둘째가 불임입니다. 바로 며 칠 전에는

로마 카톨릭 교황까지도 나서서 제발 자식들 낳으라고

아주 사정을 하드만요. 자꾸 인구가 주 니까요.

바로 이것이 망조입니다. 효도요? 누구든 좌우간 시집,

장가 안 갔으면 불효요. 부모님의 마음 을 아프게 했으니까.

또 갔으면 또 이제 뭐 어찌 못 낳는 거는 할 수가 없을지

몰라도 자식을 안 낳는 거 그거 불효입니다.

그런 줄이나 알 고 사세요. 그런데 이게 문제라고 요.

부모님의 마음은 그저 이유 불 문이야.

자기가 한평생 고생했어도 그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서

아들, 딸 낳고서 그 손자, 손녀를 품에 안 겨드리는 거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어요. 그리고 무슨 공부 많이 해 가지고

큰 일하겠다고 밖으로 나도 는 거 부모님의 마음 반갑지 않아 요.

효도는 시집가야되요. 그리고 가서 자식을 낳아

이게 효도라는 거, 이게 한국적 효입니다.

또 하나 는 가문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거 지요.

그래 옛날에는 과거를 보는 일이 있었지요. 가서

과거에 급제 하면 효자요, 허구헌 날 낙방하면 불효자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도 안 돼. 가문의 명예를 높여야지 요.

그래서 오늘도 자식들이 공부 를 잘하고 하면은

그 아버지 어머니 는 그거 자랑하고 싶어서

그저 실례 가 안 될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우 리 아들이 공부……. 어디 가서 뭘……”,

그러지 않습니까? 이게 효도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 아들 이요 삼수했는데 두고 봐야 알겠어 요.”

이거는 불효라고요 이렇게 되 면은

그러니까 가문은 명예는 높여 드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 개념으로 집약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부모님 을 즐겁게 하라. 즐겁게 해 드려라.

그리고 내 자신이 부모님의 길을 즐 거워하라.

기쁘게 해 드리라고 말 합니다.

역시 기쁘게 해 드리는 것 이 효도일 것입니다.

이런 웃지 못 할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옛 날 이조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 을 떠나서

개성을 좀 방문하게 됐습 니다.

개성에 거우동을 하게 됐는 데 온 방에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나 니깐 어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 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하는 겁니다.

“내가 나라 임금의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번 도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을 뵙지를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 을 멀리서라도

좀 뵙고 그리고 죽었 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 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 십리길을 어머니를 업고 거기 길가 에 나가 섰습니다.

그래서 임금님 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이렇게 해 드렸어요.

임금님은 멀리서 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그 때에 그 어 머니를 업고있던 그 사람 좀 불러들 여라.”

그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나서

“너는 효자다.”

그래서 금 백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답 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다는 걸 억지로, 강제로 업고 나가서

또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다는 겁니다.

왕은 역시 또 불러서 상을 “금 백냥을 주라”

그랬는데 신하들이 말하기를

“임금 님이여, 그놈을 불효자랍니다. 효도 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돈 받 았다는 말을 듣고 이거 상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 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줘야 될 것 같 습니다.”

임금님 하시는 말씀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

그랬어요.

“흉내 내었더라도 좋은 거니 줘라”

결국 은 이 사람이 그 뒤에 뉘우치고 진 짜 효자가 되었답니다.

괜찮은 이 야기이지요. 여러분 효도는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 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라고요.

존재의 가치를. 그의 지혜, 그의 경 험, 그의 사랑 그리고 그 깊은

잔소 리 속에 그 많은 잔소리 속에 중요 한 교훈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겁니 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 다.

측은히 여기던가 불쌍히 여기 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는 공경하는 겁니다.

존경이 없는 사 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귀찮게 여겨도 안됩니다. 일 본 동경에서 모였던

국제 심포지움 에서 이런 통계가 나왔습니다.

거 동이 어렵게 된 부모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학 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옵니다.

“양로원 에 보내야 됩니다.”

그게 일본이 24%, 영국이 25%, 미국이 19%, 중 국이 9%, 한국은 0.4%.

한국, 소망 이 있습니다. 거동하기 어려운 부 모는 양로원으로 보내라.

이게 일반 적으로 25%입니다만은 한국만은 아 직도 0.4%.

그래도 한국은 아직도 효에 관한 한 모범 국가입니다.

그 래서는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 는 오래 살겠다고 보약을 먹고 운동 을 하고 발광을

합니다만은 그러나 여러분 잊지마세요. 성경은 오래 사는 비결

오직 딱 하나 가르쳐 줬 어요. 그것은 효도하라 그랬어요.

부모 박대하면서 오래 살길 바라지 마세요. 그건 비성서적이요.

사업 에 성공하겠다고 몸부림을 치나? 부모님 마음 슬프게 하면서

사업 잘 되리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40년 목회 하면서 수없이 보아왔습 니다.

오래 사는 집, 거기에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계세요.

아주 성공 한 사람은 비록 잘못도 많지만은 그 분은 효자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여러분 불효하면서 잘 되고,

불효하 면서 건강하고, 불효하면서 오래 살 고…… 기대하지 마세요.

효가 장 수와 형통에 철저한 비결이에요.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제가 뉴욕 에 갔을 때에 제가 잘 아는 친구 분 이 계세요.

거기에 한번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이 많은 어머니가 계세요.

제가 이 서 울에 있을 때에 그 분, 그 어머니를 가까이 지났거든요.

잘 아는 터이 라서 가자마자 어머니 어디계시냐고

그러니까 아 저 골방에 계신데 뵙지 말라고,

냄새나고 그런다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이야기하고 있 는

동안에 어머니가 자꾸 보고싶어 서 문을 열어요.

문을 여니까 또, 가서 “어머니 가만히 계세요.”

문을 꽝 닫잖아요.

그걸 내가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웬만하면 내가 분위기를 위해서 그 냥 있으려고 했는데 안되겠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머니를 뵜더 니요,

그 어머니가요 얼마나 슬피 우는지요.

내가 곽목사님 온다는 말을 듣고 뵙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나를 못 만나게 했다고…… 그러면

서 우는 어머니를 보았어요. 여러 분 이렇게 업신여겨도

되는 겁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할 작정이 요.

구제 대상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지 마세요.

높이 존경하고 그 지혜와 경험과 그 거룩한 본을

우리 가 존중해야되요. 어느 사람은

논 문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스 라엘 나라가 강한 이유? 오직 하 나,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이 요.

그리고 전승을 중요하게 여겨 무슨 말하다가도

“이거는 조상 적부 터 내려오는 전승이요, Tradition”

하면 꼼짝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 에 강하고

그러기 때문에 지혜롭다 는 것이에요.

또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 니다.

효할 수 있는 길은 의인이 되 야 하는 거예요.

의롭게 살아야 됩 니다.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깊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높은 도덕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들이 잔소리가 많고 그들이 간섭

이 많은 이유도 사실은 다 그 깊은 곳에 심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나 는 선하지 못했다 그러나 너는 선하 라.

나는 공부를 열심히 못했다 너 만은 좀 열심히 해다오.”

보상적 심 리가 있어요. 또 나는 의롭지 못했 다

그러나 너는 의로워야 한다는 거 예요.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은

언 제나 선한 것이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잔소리도 많고 조 금은 지나칠 때도 있어요.

말씀은 다 안하고 있지만은 그런 후회가 많 아요.

과거의 후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랬다만은 너는 제발 이래다 오.”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요. 그 런고로 효의 지름길은

내가 의롭게 사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보상해 드려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야 한 다고 성경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오늘 20절로부터 보면 은

“술을 즐기는 자와 사귀지 마라. 게으른 자와 사귀지 말라.

단정히 행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그리 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듣는 지혜를 가져야 되요.

청종하는 지 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를 잘 믿는 것, 그리 스도인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효 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소원은 우리가 오래 사는 것이에요.

그런 고로 신앙생활 잘해서 영생의 기업 을 얻으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 드 리는 거예요. 우리가 지혜롭게 살 아서

모든 일에 실수없이 행하면 부 모님께 직접적으로

효도하는 일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오늘 성경이 증거하 시는 것은

“내 길을 즐거워하라.”

그럽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길은 부모님의 길,

그의 선 택, 그의 철학, 그의 이상,

그의 살 아온 생을 내가 기뻐해야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 은 마음속에 지금 무언가

잘못 살았 다고하는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만은 자식의 행위를 통하여,

“아닙니다. 부모님은 잘 살았습니다. 성공적으 로 살았습니다.

훌륭하게 살았습니 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뭐 그따위로 살았느냐고 말하지 말고요. 훌륭하게 살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듣고싶은 거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 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 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 니다 말 정도예요. 학문이 없는 사 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히는 거예 요.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 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 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 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 고……”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 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 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해놓고 구두를 벗어 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라고 그랬어요. 아 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 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 습니다.

내가 어깨 넘어로 배운바 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 다.”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여러분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 니다.”

떳떳하게 자랑을 합니다. 이것이 효도라는 거예요.

“내 아버 지는 머슴이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머슴이요,

나는 그 아들입니다.”

자 랑할 수 있어야 되요. 아버지의 직 업,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의 삶, 어 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잘 하 셨습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 하 시던 일을 나는 존경합니다.

나 거 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 하려 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효도 예요.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돼는 거예요. 그걸 자랑하게 만 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 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어요.

여러분 효가 복 그 자체입니다. 효가 있는 가정이 복됩니다.

효가 복의 근본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자녀교육을 바로 하고 싶습니까?

효도하세요. 그리 고 내버려둬도 자녀들은

저절로 훌 륭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부모 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마세요.

그런 일 은 없어요.

그런고로 부모님을 즐 겁게 합시다.

효는 문화의 유산이 아닙니다.

효는 이 나라의 단순한 도덕이 아닙니다.

이건 성경적 진 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크나큰 원리와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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